온타나스-카스트로헤리스 9km: 산 안톤 수도원과 한국인 알베르게
산티아고 순례길 프랑스 길 중 메세타 고원을 지나는 온타나스(Hontanas)에서 카스트로헤리스(Castrojeriz) 구간은 약 9km로 거리가 짧습니다. 완만한 내리막과 평지로 이어져 체력 소모는 적지만, 그늘이 전혀 없는 개활지라 뙤약볕과 바람의 영향을 그대로 받습니다.
전날 부르고스에서 온타나스까지 약 30km를 무리해서 걸었던 탓에 발목과 무릎에 피로가 쌓여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구간은 무리하게 진행하지 않고, 누적된 피로를 덜어내기 위해 의도적으로 짧은 거리를 걷기로 했습니다.
온타나스-카스트로헤리스 핵심 정보
- 총 이동 거리: 약 9km 내외
- 소요 시간: 약 2시간 30분 ~ 3시간
- 코스 난이도: 하 (완만한 내리막 및 평지 위주)
- 보급 상황: 온타나스 출발 후 산 안톤 유적지까지 마트나 바(Bar), 식수를 구할 곳 전무 (물 1L 필수)
- 산 안톤 수도원 숙박: 사전 예약 불가, 현장 선착순 기부제(Donativo) 운영
온타나스 마을을 벗어나면 완만한 비포장 흙길과 자갈길이 길게 이어집니다. 고도 변화가 거의 없어 발목에 큰 무리는 없지만, 키 큰 나무 한 그루 없는 허허벌판 개활지라 아침 해가 뜨기 시작하면 그늘을 찾을 수 없습니다.
특히 중간 거점인 산 안톤 수도원 유적지까지 약 5.5km 동안은 바(Bar)나 음수대가 전혀 나오지 않습니다. 9km라는 짧은 거리만 믿고 빈손으로 나섰다가는 건조한 바람과 직사광선 탓에 빠르게 지치기 쉽습니다.
출발 전 식수 1리터와 모자는 필수이며, 메세타 특유의 마른 흙먼지가 날릴 때를 대비해 버프와 선글라스도 배낭 손닿는 곳에 미리 꺼내두는 것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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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안톤 수도원 유적지 통과와 카스트로헤리스 도착
카스트로헤리스를 약 3.5km 앞두고 걷다 보면, 길 위로 거대한 아치가 드리워진 14세기 고딕 양식의 산 안톤 수도원(Convento de San Antón) 유적지를 만나게 됩니다.
이곳은 중세 시대 '성 안토니우스의 불(맥각중독증)'을 앓던 환자들과 지친 순례자들을 돌보던 유서 깊은 병원이자 쉼터였습니다. 비록 지금은 뼈대만 남은 폐허가 되었지만, 넓은 들판 한가운데 우뚝 솟은 거대한 아치 밑을 직접 통과해 걷는 순간만큼은 다른 어떤 구간에서도 느낄 수 없는 묘하고 경건한 감동을 선사합니다. 현재 이곳 유적지 한편에는 전기와 온수 없이 촛불을 켜고 하룻밤을 묵어가는 선착순 기부제 알베르게가 운영되고 있어, 중세 순례자의 정취를 온전히 느껴보고 싶은 이들이 많이 찾기도 합니다.
수도원을 지나 도착한 카스트로헤리스는 산 언덕 위에 우뚝 솟은 고성(Castillo de Castrojeriz)을 중심으로 길게 형성된 아름다운 중세 마을입니다. 거리가 짧아 정오 이전에 도착한 저희는 전날의 피로를 풀며 여유로운 휴식을 즐겼습니다. 오후에 체력적 여유가 있다면 마을 뒤편 언덕 위 고성 터에 올라가 끝없이 펼쳐진 메세타 평원의 탁 트인 전경과 일몰을 감상해 보시는 것도 추천합니다.
한국인 알베르게 오리온 식사와 현실적 대화
마을 입구 쪽 공립 알베르게에 체크인한 뒤, 한국인이 운영하는 알베르게 겸 식당(오리온)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점심 오픈 시간에 맞춰 찾아갔습니다.
이곳에서 라면과 김밥, 그리고 시원한 스페인 생맥주를 주문해 둘이서 든든하게 먹고 총 30유로 정도를 지불했습니다. 스페인 일반 식당의 순례자 메뉴(메누 델 디아)와 비교하면 다소 가격대가 있는 편이지만, 뙤약볕 속 30km를 걸으며 누적된 피로와 부부싸움으로 종일 무거웠던 마음을 달래기에는 전혀 아깝지 않은 한 끼였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알베르게 사장님과 대화를 나눴습니다. 순례길을 걸으면서 이곳이 좋아 정착했다는 한국인 여성 사장님은 "밖에서 볼 때의 낭만과 달리, 타국에서 직접 숙소를 운영해 보니 체력적으로나 행정적으로 참 고되고 쉽지 않다"는 솔직한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길을 걷는 동안 막연히 '이곳에서 살아보면 어떨까' 떠올렸던 동경이 얼마나 순진한 생각이었는지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연고도 없는 먼 타국에서 혼자만의 힘으로 자리를 지키며 순례자들에게 쉼터를 내어주는 모습에서 깊은 존경심이 들었습니다.
- 숙소 위치: 알베르게 오리온 (Avenida de la Colegiata 28, Castrojeriz)
- 특징: 알베르게 숙박 운영 및 식당(비빔밥, 라면, 김밥 등 한식 메뉴) 이용 가능
든든하게 점심을 먹고 공립 알베르게로 돌아와 다리를 벽에 기대어 올리기도 하고 발 마사지도 하며 피로를 풀어 주었습니다. 이날 카스트로헤리스에서 일찍 걸음을 멈추고 온전히 쉬어둔 것은 다음 날을 위한 중요한 전략이기도 했습니다. 카스트로헤리스를 벗어나자마자 다음 날 아침 곧바로 메세타 구간 중 가장 가파른 오르막인 '모스테라레스 언덕'을 걸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무리해서 일정을 더 밀어붙이지 않고 다리를 아껴둔 덕분에, 다음 날 아침 가파른 고갯길을 무릎 부담 없이 안전하게 오를 수 있었습니다.
온타나스에서 카스트로헤리스로 이어지는 9km는 메세타 평원의 고요함을 통과하며 이전 일정의 피로를 털어내기 적합한 코스였습니다.
거리가 짧다고 물을 적게 챙기면 개활지 뙤약볕에 낭패를 볼 수 있으니 기본 준비는 철저히 해야 합니다. 매일 무리해서 먼 거리를 나아가기보다, 몸 상태에 맞춰 하루쯤 짧게 끊어 쉬어가는 것도 길을 완주하기 위한 현실적인 요령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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