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마르틴 델 카미노에서 아스토르가: 파소 혼로소 다리, 주교궁, 마요르 광장

산 마르틴 델 카미노(San Martín del Camino)에서 아스토르가(Astorga)까지는 산티아고 순례길 프랑스길에서 비교적 짧은 편에 속하는 약 23~24km의 구간입니다. 큰 산을 넘는 구간은 아니지만, 중간에 두 갈래 길을 선택할 수 있고 후반부에는 오르내림이 있어 단순히 평탄한 길이라고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 출발지: 산 마르틴 델 카미노(San Martín del Camino)
  • 도착지: 아스토르가(Astorga)
  • 총 거리: 약 23~24km
  • 주요 경유지: 오스피탈 데 오르비고 → 산토 토리비오 십자가 → 아스토르가
  • 길의 특징: 초반 평탄한 농경지 구간과 후반부의 완만한 언덕
  • 갈림길 선택: 오스피탈 데 오르비고 이후 N-120 국도변 평지 코스와, 언덕을 넘어 마을을 거치는 우회 시골길(Santibáñez 경유)이 있습니다. 두 길은 산토 토리비오 십자가 부근에서 합류합니다.

길을 따라 약 6~7km 정도 걸으면 오르비고강을 건너기 위해 푸엔테 데 오르비고(Puente de Órbigo) 방향으로 길이 이어집니다. 그리고 이곳에서 이 구간의 가장 인상적인 역사적 유적 가운데 하나인 파소 혼로소(Paso Honroso) 다리를 만나게 됩니다.

파소 혼로소 다리를 건너 오스피탈 데 오르비고로 들어가는 순례자 모습

기사들의 이야기가 남아 있는 파소 혼로소 다리

오르비고강 위에 놓인 파소 혼로소 다리는 중세부터 순례자와 여행자들이 강을 건너던 중요한 통로였으며, 특히 1434년 이곳에서 벌어진 기사 시합과 관련된 이야기로 유명합니다.

레온의 기사 수에로 데 키뇨네스(Suero de Quiñones)가 자신의 사랑을 증명하기 위해 300개의 창을 부러뜨릴 때까지 다른 기사들과 마상 창시합을 벌였다는 유명한 '파소 온로소(Paso Honroso, 영광스러운 패스)'의 전설이 남아있는 역사적인 공간입니다.

순례자에게는 그저 강을 건너는 다리처럼 보일 수 있지만, 잠시 걸음을 늦추고 바라보면 이곳이 수백 년 동안 사람과 물자가 오갔던 길이라는 사실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 구간에서 순례자들에게 특별한 쉼터가 되어주는 곳이 바로 산토 토리비오 십자가입니다. 언덕 위에서 주변 풍경을 시원하게 내려다볼 수 있는 곳으로, 맑은 날에는 멀리 아스토르가 시내와 몬테스 데 레온, 텔레노 산맥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비록 아직 걸어야 할 거리가 남아 있지만, 멀리 오늘의 목적지가 시야에 들어오는 것만으로도 지친 다리에 큰 힘을 얻게 됩니다.

이후 산 후스토 데 라 베가(San Justo de la Vega)를 지나 마지막 구간을 걷게 됩니다. 아스토르가는 낮은 언덕 위에 자리하고 있어 마지막에는 약간의 오르막을 올라야 합니다.

2천 년의 역사 속 가우디 주교궁과 대성당의 감동

아스토르가에 도착하면 단순히 순례길의 하루 일정을 마쳤다는 느낌과는 조금 다른 분위기를 만나게 됩니다. 아스토르가는 2천 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도시로, 로마 시대에는 아스투리카 아우구스타(Asturica Augusta)라는 이름으로 중요한 도시였습니다.

또한 아스토르가는 산티아고 순례길과 로마 시대부터 이어진 은의 길(Ruta de la Plata)이 만나는 교통의 요지였습니다. 이러한 지리적 위치 때문에 오래전부터 사람과 물자가 오갔고, 오늘날에도 성벽과 성당, 수도원, 역사적인 건축물 등을 통해 그 흔적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아스토르가 도심에 들어서자 가장 먼저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마치 동화 속에서 튀어나온 듯한 아름다운 성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진짜 중세 시대의 고성인 줄 알았으나, 알고 보니 스페인이 자랑하는 천재 건축가 '안토니 가우디'가 설계한 주교궁(Palacio de Gaudí)이었습니다.

바르셀로나에서만 볼 수 있을 줄 알았던 가우디의 작품을 이 멀리 순례길 위에서 보니 정말 반갑고 신기했습니다. 주교궁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바라볼 만큼 매력적이고 사랑스러운 건축물이었습니다.

순례길을 다 끝내고 바르셀로나에서 '카사 밀라'를 방문했을 때의 일입니다. 여행 사진을 정리하며 비교해 보니 아스토르가 주교궁에서 봤던 부드러운 곡선과 석재 느낌이 카사 밀라와 많이 닮아있어서 깜짝 놀랐습니다. 가우디의 천재성을 다시 한번 느끼는 순간이었습니다.

가우디 주교궁 바로 옆에는 웅장한 '아스토르가 대성당'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하늘을 향해 높게 뻗은 첨탑과 화려한 조각 장식이 고딕 양식 특유의 압도적인 웅장함을 자랑합니다.

이곳은 해 질 무렵 시간대에 방문해 보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노을빛이 성당의 석재 외벽을 물들일 때, 낮에는 그저 웅장해 보이던 건물이 따뜻한 황금빛으로 변하면서 근사한 풍경을 만들어 냅니다. 광장 벤치에 앉아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따뜻해지는 곳입니다.

순례길에서는 매일 정해진 거리를 걷는 데 집중하다 보니 성당이나 문화재를 서둘러 지나치는 경우도 많습니다. 하지만 아스토르가에서만큼은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가우디 주교궁과 대성당을 천천히 둘러보시길 바랍니다.

단순한 관광지를 넘어, 길고 고된 여정 속에서 지친 마음을 달래고 쉬어가기 참 좋은 곳이었습니다.

동화 속 성을 닮은 아스토르가 가우디 주교궁 건축물

달콤함 대신 마요르 광장에서 즐긴 행복

16세기 신대륙에서 들여온 코코아 콩을 스페인 본토에서 가장 먼저 가공하기 시작한 곳이 바로 아스토르가입니다. 수공예 초콜릿과 박물관이 있을 만큼 초콜릿에 대한 자부심이 높은 도시입니다. 무거운 배낭을 메고 수십 킬로미터를 걸어온 순례자에게 이 달콤한 명물은 절대 지나칠 수 없는 유혹이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저희는 초콜릿을 맛보지 못했습니다. 하필 저희가 도착한 날이 일요일이었던 데다, 스페인의 낮 휴식 시간인 시에스타(Siesta, 보통 오후 2시~4시)까지 겹치게 되어 대부분의 상점이 문을 닫았기 때문입니다.

스페인은 시에스타 시간과 일요일 휴무를 엄격하게 지키는 편이라, 마트나 상점이 예외 없이 문을 닫아 당황스러운 순간이 종종 생깁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순례길을 끼고 있는 일부 식당(Bar)의 경우 브레이크 타임에도 문을 열어두는 곳이 있어 굶는 일까지는 피할 수 있었습니다.

순례길을 걸으실 때 마을이나 도시에 도착하기 전 필요한 물품과 간식거리는 일요일이나 시에스타 시간대를 잘 확인하여 구매하시길 바랍니다. 저희도 순례길 초반에는 멋모르고 갔다가 발길을 돌린 적이 많았습니다. 특히 긴 길을 걸어 다리가 무거운 상태에서 굳게 닫힌 문을 보면 나도 모르게 맥이 풀리고 서글픈 마음까지 들었습니다.

아쉬운 대로 아스토르가의 또 다른 대표 명물인 고기 스튜 '코시도 마라가토(Cocido Maragato)'를 먹어보기로 했습니다. 이 음식은 과거 전쟁 중에 고기로 먼저 기력을 보충하던 풍습에서 유래해 '고기 ➔ 채소와 병아리콩 ➔ 따뜻한 국물' 순서로 거꾸로 먹는 독특한 전통이 있어 꼭 한번 맛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큰 기대를 안고 찾아간 소문난 맛집마저 일요일 대기와 시에스타가 겹쳐 결국 식사를 하지 못하고 발길을 돌려야 했습니다.

결국 저희는 시내 중심인 마요르 광장(Plaza Mayor)으로 돌아와 문을 연 식당에서 익숙한 메뉴를 주문해 만족스러운 식사를 마쳤습니다. 비록 유명한 명물 음식과 초콜릿은 먹지 못했지만, 마요르 광장은 작지만 현지인과 순례자, 여행객들로 붐비는 활기차고 정겨운 곳이었습니다.

광장에서 휴식을 취하다 운이 좋으면 시청 건물 시계탑의 인형들이 정각에 맞춰 움직이는 귀여운 모습도 관람할 수 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산 마르틴 델 카미노에서 아스토르가까지 길은 힘든가요?

A. 전체적으로 큰 산을 넘는 구간은 아니지만 오스피탈 데 오르비고 이후에는 두 가지 경로 중 하나를 선택하게 되며, 산티바녜스 데 발데이글레시아스 방향은 후반부에 오르내림과 돌길이 있어 체감 난도가 높아질 수 있습니다.

Q. 아스토르가에서 볼 만한 대표적인 장소는 어디인가요?

A. 가우디 궁전, 산타 마리아 대성당, 아스토르가 성벽, 마요르 광장, 초콜릿 박물관 등이 대표적입니다. 특히 가우디 궁전은 아스토르가의 역사적 분위기와는 또 다른 독특한 건축미를 보여주는 장소입니다.

Q. 가우디 주교궁과 대성당 관람 시 순례자 할인이나 팁이 있나요?

A. 가우디 주교궁(궁전 박물관)과 대성당 모두 순례자 여권(크레덴샬)을 제시하면 할인 혜택을 받을 수 있습니다. 내부 관람은 1~2시간 정도 소요되며, 외관을 감상하기에는 석재 외벽이 황금빛으로 물드는 늦은 오후나 일몰 시간대가 가장 좋습니다.

Q. 아스토르가에서 꼭 먹어봐야 할 음식은 무엇인가요?

A. 고기 스튜를 거꾸로 코스로 즐기는 전통 요리 '코시도 마라가토(Cocido Maragato)'가 대표적입니다. 또한 스페인 최초로 코코아 가공을 시작한 도시답게 수공예 초콜릿과 전통 버터 케이크인 '만테카다(Mantecadas)'도 꼭 맛봐야 할 명물입니다.

Q. 일요일이나 시에스타 시간에 아스토르가에 도착하면 식사는 어떻게 하나요?

A. 일반 상점이나 대형 마트, 일반 레스토랑은 문을 닫지만, 마요르 광장 주변이나 순례자 길목에 위치한 'Bar' 형식의 식당들은 브레이크 타임 없이 연중무휴로 운영되는 곳이 많습니다. 하몽 샌드위치(Bocadillo)나 또르띠야 같은 간단한 식사는 언제든 가능하니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다만, 특정 비상약이나 간식거리는 도시에 도착하기 전 평일/오전 시간대에 미리 준비해 두는 것이 안전합니다.

마치며

산 마르틴 델 카미노에서 아스토르가까지의 길은 산티아고에 한 걸음 더 가까워졌음을 실감하게 해 준 특별한 구간이었습니다. 오르비고강의 고풍스러운 다리와 중세 기사의 전설을 지나, 2천 년의 시간을 품은 아스토르가에 도착하며 하루의 여정을 무사히 마쳤습니다.

먹고 싶었던 것을 먹지 못하고 결국 마요르 광장에 앉아 식사를 하며 하루의 피로를 풀었던 그 시간은 지금도 또렷하게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여행에서는 계획대로 되지 않는 순간도 여행의 일부가 됩니다. 저희에게 아스토르가는 바로 그런 곳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