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 순례길 #20] 프로미스타(Frómista): 길 위의 천사들과 남편을 위한 근사한 생일 파티
카스트로헤리스를 떠나 다음 목적지인 '프로미스타(Frómista)'로 향하는 새벽길은 그날따라 유독 더 아늑하고 예쁜 빛으로 물들어 있었습니다.
순례길의 새벽을 매번 맞이하지만, 지평선 저편에서 번져오는 새벽빛을 바라보며 걷는 발걸음은 언제나 변함없는 깊은 감동을 선사하곤 합니다.
메세타 평원의 고요함을 가르며 시작된 이날의 여정 역시, 길 위에서 만난 온기 덕분에 평생 잊지 못할 따뜻한 기억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1. 길 위의 천사들과 성당에서 마주한 신부님의 온기
순례길을 걷다 보면 마을과 마을 사이의 거리가 아주 멀어 지치고 목이 마를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마치 신기루처럼 등장하는 감사한 분들이 계십니다.
순례자들을 위해 길가나 쉼터에 과일, 음료, 간단한 빵 등을 준비해 두고 기부금(Donation) 형태로 나누어 주는 이들입니다. 저희는 그분들을 '길 위의 천사'라고 부르곤 했습니다.
프로미스타로 향하는 길에서도 어김없이 이 따뜻한 손길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이번에는 길가가 아닌 고즈넉한 작은 성당 안에서 신부님이 직접 순례자들을 반겨주고 계셨습니다.
신부님께서는 지친 순례자들에게 따뜻한 차 한 잔과 고소한 빵을 친절하게 나누어 주셨습니다. 저희 부부는 성당 안에서 잠시 촛불을 밝히고 감사의 기도를 올린 뒤, 차와 빵을 나누며 신부님과 짧은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작은 기부금을함에 넣고 나오는 길, 마음속까지 따스한 온기로 가득 차오르는 것을 느꼈습니다.
2. 마을 축제의 소소한 풍경, 사람 사는 세상의 닮은꼴
길 위의 온기를 품고 부지런히 걸어 마침내 목적지인 프로미스타에 도착했습니다. 마침 저희가 도착한 날은 마을에 작은 축제나 행사가 열리는 날이었는지, 평소의 고요한 순례길 마을과는 달리 북적이고 활기찬 기운이 가득했습니다.
순례자들뿐만 아니라 온 동네 아이들과 부모들이 거리로 나와 음악에 맞춰 춤을 추고 웃음꽃을 피우고 있었습니다. 아이들의 손을 잡고 행복하게 춤을 추는 마을 사람들의 모습을 그저 가만히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가슴 한구석이 훈훈해졌습니다.
언어와 문화는 전혀 다르지만,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 모여 소소한 일상의 기쁨을 나누는 모습에서 '아, 사람 사는 모습은 국경을 넘어 어디나 똑같구나' 하는 정겨운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순례길은 거창한 풍경뿐만 아니라, 이처럼 소박한 사람들의 삶을 엿보는 재미도 쏠쏠했습니다.
3. 한국을 사랑하는 사장님, 그리고 늦었지만 완벽했던 남편의 생일 파티
이날 프로미스타에서 저희 부부에겐 아주 중요한 일정이 있었습니다. 바로 며칠 전 지나쳐버린 남편의 생일을 뒤늦게나마 제대로 축하해 주는 것이었습니다.
당일에는 워낙 작고 고즈넉한 시골 마을에 머물렀던 탓에 근사한 식당을 찾지 못해 마음 한구석에 아쉬움이 크게 남아있었습니다. 그래서 프로미스타에 도착하자마자 열심히 검색한 끝에 근사한 레스토랑 한곳을 찾아갔습니다.
다행히 그 식당의 사장님은 한국인 순례자들을 무척이나 좋아하고 반겨주시는 분이셨습니다. 본인도 한국을 꼭 여행해 보고 싶어서 열심히 돈을 모으는 중이라며, "서울과 부산에 꼭 가보고 싶다"고 눈을 반짝이며 말씀을 건네오셨습니다.
한국에 대한 애정이 듬뿍 담긴 친절한 서비스 속에서, 저희는 두툼한 연어 스테이크와 풍미 가득한 등갈비 스테이크, 그리고 스페인산 와인을 나누며 남편의 늦은 생일을 마음껏 축하했습니다.
훌륭한 음식 맛과 사장님의 따뜻한 입담 덕분에 '조금 늦더라도 이곳에서 파티를 하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 만큼 완벽한 저녁이었습니다.
마치며: 풍성한 마음을 안고 다음 여정으로
아름다운 새벽빛으로 시작해 성당 신부님의 빵과 차, 프로미스타 마을 축제의 활기, 그리고 남편의 근사했던 뒤늦은 생일 파티까지... 오늘 하루는 길 위에서 마주친 수많은 인연과 정성이 합쳐져 잊지 못할 풍성한 하루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늦은 생일 파티였지만 좋아하는 음식을 나누며 환하게 웃는 남편의 모습을 보니 그동안 메세타 지대를 걸으며 쌓였던 피로가 싹 달아나는 듯했습니다.
다음 글에서는 프로미스타를 떠나, 메세타 평원의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며 고요한 정취를 전해주는 마을 **'카리온 데 로스 콘데스(Carrión de los Condes)'로 향하는 여정**을 들려드리겠습니다. 저희 부부의 순례길 이야기에 늘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Buen Cami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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