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 순례길 #6] 이틀 만에 찾아온 첫 후회, 비 내리는 주비리(Zubiri) 자갈길과 따뜻한 샹그리아

론세스바예스의 거대한 알베르게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드디어 순례길의 두 번째 아침을 맞이했습니다. 낯선 환경에서의 첫날은 무사히 넘겼지만, 진짜 고생은 이제부터가 시작이었습니다.

둘째 날의 목적지는 아름다운 돌다리가 있는 마을 '주비리(Zubiri)'였습니다. 원래 산티아고 순례길은 매일매일이 새로운 도전의 연속이라지만, 이곳으로 가는 길은 제 상상 이상으로 험난했습니다.

거친 날씨와 험한 길 덕분에 걷기 시작한 지 단 이틀 만에 제 입에서 "내가 여길 대체 왜 온다고 했을까?" 하는 첫 후회가 터져 나오게 만들었던 잊지 못할 하루의 이야기를 들려드릴까 합니다.

1. 비 내리는 악명 높은 자갈길, 나를 살린 등산 스틱

주비리로 가는 길의 마지막 구간은 순례자들 사이에서 '무릎 파괴자'라 불릴 정도로 악명 높은 자갈길 내리막 코스입니다.

하지만 저는 사전에 그곳이 그렇게 험한 길이라는 정보가 전혀 없었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전날부터 내리던 비가 주비리로 향하는 내내 멈추지 않고 쏟아졌습니다.

빗물에 젖어 미끄러운 진흙과 뾰족한 돌부리들이 뒤섞인 가파른 내리막길은 50대인 저의 무릎과 발목에 엄청난 공포와 하중으로 다가왔습니다.

비바람을 맞으며 미끄러지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다 보니, 출발할 때의 그 낭만은 온데간데없고 뼈저린 후회가 밀려왔습니다.

'한국에 있는 따뜻하고 편안한 내 집을 놔두고, 사서 이 고생을 하다니.' 하지만 원망할 틈도 없이 그저 묵묵히 걸어야만 했습니다.

만약 한국에서부터 단단히 길들여 온 등산화와 제 손에 쥐어진 두 개의 등산 스틱이 없었다면, 저는 그 험악한 자갈길에서 크게 넘어져 남은 일정을 모두 포기해야 했을지도 모릅니다.

미끄러운 돌길 위에서 스틱에 온몸의 체중을 의지하며 지팡이 삼아 한 걸음씩 조심스레 내디뎠던 그날, 철저한 장비 준비가 곧 길 위에서의 생명줄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뼈저리게 절감했습니다.

2. 젖은 등산화와 마음을 말려준 알베르게 주인의 배려

혹독한 비바람, 그리고 미끄러운 자갈길과의 사투 끝에 마침내 주비리의 알베르게에 도착했을 때, 저는 마치 물에 빠진 생쥐처럼 온몸이 젖어 완전히 지쳐 있었습니다.

그런데 무거운 몸을 이끌고 문을 열자마자, 알베르게 주인이 천사 같은 미소로 저를 따뜻하게 반겨주었습니다.

빗물과 진흙으로 흠뻑 젖은 제 등산화를 보더니, 제가 묻기도 전에 신문지를 뭉텅이로 가져와 신발 안을 채워 물기를 빼라며 건네주셨습니다.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습니다. 주인은 따뜻하게 타오르는 벽난로 앞 가장 온기가 잘 닿는 좋은 자리에 제 등산화를 직접 가져다 놓아주시며, 언 몸을 푹 녹일 수 있도록 편안하게 대해주셨습니다.

밖에서 그토록 매섭게 몰아치던 비바람과 험난했던 길 위에서의 깊은 후회가, 그 친절한 미소와 벽난로의 온기 앞에서 눈 녹듯 스르르 사라지는 기분이었습니다.

길은 비록 제 몸을 매섭게 할퀴었지만, 그 끝에서 만난 현지인의 따스한 배려는 저에게 다시 내일의 길을 나설 수 있는 아주 크고 든든한 위로와 힘이 되어주었습니다.

3. 한국인 친구들을 향한 작은 배려, 그리고 달콤한 샹그리아

이 따뜻한 알베르게에서 저는 아주 반가운 인연들을 만났습니다. 바로 한국인 젊은 청년들이었는데, 신기하게도 이 친구들은 훗날 800km 순례길 내내 우연히 마주치고 안부를 묻는 소중한 동행들이 되었습니다.

저녁 시간이 되자 이 싹싹한 친구들이 먼저 다가와 함께 식사하자고 예의 바르게 권유해 주었습니다. 타지에서 듣는 모국어의 초대가 정말 고마웠지만, 한편으로는 나이 든 제가 끼어들면 젊은 친구들끼리 편하게 나누는 대화에 행여나 방해가 될 것 같았습니다.

어쩌면 예의상 건넨 말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웃으며 마음만 감사히 받고 저는 근처의 작은 식당으로 향했습니다.

식당에 자리를 잡고 스페인에 오면 꼭 먹어봐야 한다는 붉고 달콤한 '샹그리아(Sangria)' 한 잔과 든든한 저녁 식사를 주문했습니다.

하루 종일 비바람 속에서 잔뜩 긴장했던 몸에 시원하고 달달한 샹그리아가 들어가니, 꽁꽁 얼어붙었던 피로가 사르르 녹아내리는 듯했습니다.

이렇게 즐긴 만찬의 여운을 안고 숙소에 돌아오자마자, 극도에 달했던 다리의 피로감 때문에 저는 침대에 눕자마자 그대로 기절하듯 깊은 잠에 빠져들었습니다.

마치며: 고통 뒤에 찾아오는 달콤한 휴식

이틀 만에 찾아온 덜컥 겁나는 첫 번째 후회, 그리고 그것을 단숨에 녹여준 사람들의 따뜻한 배려와 달콤한 샹그리아 한 잔. 주비리에서의 밤은 순례길이 주는 '고통과 위로'라는 묘한 굴레의 진짜 매력을 처음으로 깊게 맛본 날이었습니다. 다리는 천근만근 무거웠지만, 마음만은 그 어느 때보다 따뜻하게 채워진 채 하루를 마무리했습니다.

다음 글에서는 드디어 비가 그치고, 헤밍웨이가 사랑한 열정의 도시이자 아름다운 중세 골목을 품은 '팜플로나(Pamplona)'를 향해 걷는 세 번째 날의 여정을 들려드리겠습니다. 조금씩 길과 동화되어 가는 50대 순례자의 다음 이야기도 기대해 주세요! Buen Cami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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