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 순례길의 시작: 파리 여행에서 생장피에드포르 알베르게 첫날까지
스페인 북부를 가로질러 800km를 걸어가야 한다는 생각에 처음엔 걱정이 앞섰습니다. 그래도 오랜 버킷리스트였던 만큼 너무 긴장하거나 무거운 마음으로 시작하고 싶진 않았습니다. 그래서 출발지로 가기 전에 파리에 먼저 들러 며칠 동안 그냥 편하게 여행을 즐겼습니다.
순례길 전에 파리를 먼저 여행한 이유
순례길 출발지로 곧장 가지 않고 파리를 먼저 찾은 가장 큰 이유는 시차와 긴 비행 시간 때문이었습니다. 직항이 아닌 경유편을 이용해 이동에만 스무 시간 가까이 걸리는 데다, 50대의 체력으로는 도착하자마자 산길을 걷는 게 무리라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며칠 여유를 두고 시차에 적응하면서 몸을 풀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파리에 머무는 동안만큼은 순례길 생각을 일부러 하지 않았습니다. 아침에는 숙소 근처 빵집에서 크루아상에 따뜻한 커피 한 잔을 마시고, 오후에는 루브르 박물관에 들러 모나리자도 보며 남편과 센강 변을 천천히 걸었습니다. 밤에는 바토무슈를 타고 반짝이는 에펠탑 야경을 바라보고 있으니, 앞으로 걸어야 할 순례길에 대한 걱정도 자연스레 잊혔습니다.
돌아보면 그 대책 없던 여유 덕분에 출발 전의 막연한 불안을 덜어낼 수 있었습니다. 나중에 길을 걸으며 몸이 지치고 힘들 때마다 파리에서 보냈던 달콤한 며칠이 큰 위안이 되어주었습니다. 굳이 무거운 각오 대신 가벼운 마음으로 출발하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내내 들었습니다.
생장으로 가는 기차 안, 점점 실감 나는 순례길
파리 몽파르나스역에서 TGV를 탔을 때만 해도 평범한 기차 여행 같았습니다. 프랑스 남서부의 바욘으로 향하는 동안 차창 밖 풍경을 멍하니 바라보며 이동했습니다. 진짜 순례길의 분위기를 느낀 건 바욘에서 출발지인 생장피에드포르로 가는 작은 완행열차로 갈아타면서부터였습니다.
열차에 오르자마자 차 안의 공기가 확 달라졌습니다. 좁은 통로와 좌석 발치마다 사람 몸집만 한 큰 배낭들이 가득 차 있었거든요. 출발한 나라도, 쓰는 말도 제각각이었지만 서로 마주치는 눈빛에는 말하지 않아도 통하는 긴장과 설렘이 가득했습니다.
배낭에 달린 노란 조개껍데기를 보고 조용히 눈인사를 건넸습니다. 굳이 말을 많이 섞지 않아도 "아, 저 사람도 나와 같은 길을 걷겠구나" 하는 친근함이 느껴졌습니다. 창밖으로 낯선 프랑스 시골 풍경이 지나가고 생장역이 가까워질수록 가슴이 쿵쾅거리던 순간은 지금도 잊히지 않습니다.
현실로 다가온 생장 알베르게의 첫날밤
생장에 도착하자마자 순례자 사무실로 향해 순례자 여권(크레덴시알)을 발급받고 배낭에 노란 조개껍데기를 매달았습니다. 비로소 진짜 순례길 위에 섰다는 실감이 났습니다.
하지만 예약해 둔 알베르게 문을 여는 순간, 낭만은 싹 사라지고 날것 그대로의 현실이 찾아왔습니다. 방은 파티션으로 나뉘어 2층 침대들이 놓여 있었는데, 다행히 남편과 같은 방을 써서 마음이 놓였지만 혼자 왔다면 첫날부터 꽤 막막했겠다 싶었습니다. 사방이 완전히 막힌 방이 아니다 보니 배낭 정리하는 부스럭 소리와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는 코골이 소리가 방 전체에 그대로 울려 퍼졌습니다. 사진으로 보며 기대했던 아늑함과는 사뭇 다른 진짜 현실이었습니다.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는데 헛웃음이 절로 나왔습니다. 하루 전까지만 해도 파리의 조용한 카페에 앉아 있었는데, 순식간에 거친 현실 한복판으로 들어온 기분이었습니다.
낯선 이들의 코골이와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밤새 뒤척이면서도, 이상하게 마음 한구석에서는 본격적으로 길을 걷는다는 생각에 은근한 설렘이 차올랐습니다. 돌아보면 순례길이라고 해서 시작부터 어떤 대단한 깨달음을 얻거나 거창한 결심을 품을 필요는 전혀 없었던 것 같습니다. 파리에서 며칠 쉬며 몸과 마음을 비워둔 덕분이었을까요. 낯선 알베르게의 밤도 담담하게 흘려보내고, 다음 날 아침 남편과 피레네를 향해 기분 좋게 첫 발걸음을 내디딜 수 있었습니다.
직접 다녀오며 정리해 본 출발 팁
- 파리-바욘 기차 예매: TGV 요금은 출발일이 다가올수록 크게 오르기 때문에 일정이 확정되면 두세 달 전 미리 예약해 두는 편이 좋습니다. 바욘역에서 생장행 열차로 갈아탈 때 환승 대기 시간이 10분 남짓으로 촉박한 편도 있으니 예매하실 때 환승 시간을 넉넉히 확인해 두세요.
- 생장 첫날 숙소는 사전 예약 권장: 길 위에서는 걷는 속도에 맞춰 당일 숙소를 잡아도 충분하지만, 출발지인 생장은 봄·가을 성수기에 숙소가 금방 찹니다. 파리에서 생장까지 환승 포함 6~7시간 이동하고 나면 체력이 많이 소진되므로 첫날 숙소만큼은 미리 예약해 두는 게 안전합니다.
- 첫날 피레네 구간 대비: 생장에서 론세스바예스까지는 약 25km에 해발 1,400m를 넘어야 하는 가장 가파른 코스입니다. 특히 50대 이상이시라면 첫날부터 무리해서 완주하려 하지 마시고 배낭 배송 서비스(동키 서비스)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보세요. 저 역시 산을 넘을 때 갑작스러운 비바람을 만나 애를 먹었는데, 배낭이라도 가벼웠기에 다치지 않고 무사히 첫 고비를 넘길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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