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 순례길 #3] 50대 완주의 밑거름: 북한산과 둘레길 걷기 연습, 등산화 길들이기

"50대에 800km를 걸었는데 안 힘들었어?" 순례길을 다녀온 후 가장 많이 받는 질문 중 하나입니다. 출발 전에는 중간에 다치거나 낙오하면 어쩌나 걱정했지만, 막상 스페인 길 위에 서니 제 생각보다 훨씬 잘 걷는 제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나중에는 걷는 여정 자체를 즐기게 되었지요. 50대인 제가 프랑스길을 가뿐하게 걸을 수 있었던 숨은 비결은, 출발 전 국내에서 몇 달 동안 꾸준히 했던 '걷기 연습'과 나에게 딱 맞는 '등산화 길들이기' 덕분이었습니다.

1. 내 발을 지켜줄 등산화 고르기와 직접 신고 길들인 시간

순례길 준비의 절반은 '신발'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매일 20km 이상 거친 돌길과 흙길을 걸어야 하기에, 발에 맞지 않는 신발을 신고 가면 며칠 못 가 물집과 통증으로 길을 포기해야 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저 역시 나에게 맞는 등산화를 찾기 위해 수많은 후기를 찾아보고 매장에 가서 직접 신어보며 꼼꼼하게 골랐습니다. 오랜 고민 끝에 제 발 모양에 편안하게 맞는 등산화를 구매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새 신발을 그대로 스페인에 가져가는 것보다, 새 가죽과 빳빳한 밑창이 내 발에 익숙해질 때까지 길들이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여 저는 등산화를 사자마자 일상생활에서도 자주 신고, 동네 산책을 갈 때도 늘 챙겨 신었습니다.

그렇게 끈을 묶는 강도를 조절해 보고, 양말 두께도 이것저것 맞춰보면서 신발이 제 발 모양에 맞게 서서히 늘어나고 말랑해지도록 만들었습니다.

스페인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그 등산화가 제 몸의 일부처럼 편안해져 있었기에, 남들이 물집 때문에 고생할 때 저는 발바닥 통증 없이 가볍게 발을 내디딜 수 있었습니다.

2. 내 집 앞 보물, 북한산에서 기른 단단한 흙길 적응력

다행히 제 집 뒷산이 바로 그 유명한 북한산이었습니다. 평소에도 걷고 운동하는 걸 좋아했지만, 산티아고행을 결심한 이후부터는 새로 산 등산화를 신고 매일같이 북한산을 오르내리며 본격적으로 몸을 풀기 시작했습니다.

아시다시피 북한산은 경사가 가파르고 바위와 흙이 뒤섞인 험준한 산입니다. 이곳을 매일 등산화 끈을 단단히 묶고 오르내린 덕분에, 하체 근육과 발목 인대가 스페인의 어떤 거친 길도 견뎌낼 수 있을 만큼 튼튼해졌습니다.

특히 산을 오를 때보다 내려올 때 무릎에 가해지는 하중을 견디는 연습을 한국에서 미리 해둔 것이 아주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프랑스길 첫날 마주하게 되는 악명 높은 피레네산맥의 끝없는 내리막길에서도 제가 부상 없이 내려올 수 있었던 것은, 매일 아침 북한산의 가파른 계단과 돌길을 타며 몸과 등산화를 길들였던 감각 덕분이었습니다.

준비 없는 도전은 무모하지만, 차근차근 준비한 도전은 즐거움이 된다는 것을 북한산 자락에서 먼저 배웠습니다.

3. 서울 둘레길과 성곽길에서 익힌 장거리 도보 감각

산에서 경사도를 견디는 힘을 길렀다면, 평지와 완만한 경사를 하루에 오랜 시간 지속해서 걷는 지구력은 '서울 둘레길'과 '한양도성 성곽길'을 걸으며 채웠습니다.

순례길은 하루에 적게는 15km, 많게는 30km 가까이 대여섯 시간을 쉬지 않고 걸어야 하는 대장정입니다. 이 감각을 몸에 새기기 위해 주말마다 서울 둘레길을 걸었습니다.

길들인 등산화를 신고 둘레길을 장시간 걸어보면서, "몇 시간 정도 걸었을 때 발바닥 어디가 먼저 피로해지는지", "양말은 어느 정도 두께가 발을 가장 잘 감싸주는지" 제 몸의 신호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아름다운 성곽길을 걸을 때는 스페인의 오래된 길을 걷는 제 모습을 상상하며 설레기도 했습니다. 한국에서 이미 길들여진 편안한 신발을 신고 걷는 것이 일상이 되다 보니, 스페인에 도착했을 때는 몸도 마음도 '순례자 모드'로 완벽하게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체력이 받쳐주고 발이 편안하니, 남들이 발바닥 아픔에 땅만 보고 걸을 때 고개를 들어 스페인의 눈부신 하늘과 들판을 마음껏 즐길 수 있었습니다.

마치며: 가장 중요한 장비는 내 발과 몸입니다

비싸고 좋은 등산화나 배낭을 사는 것보다 훨씬 중요한 것은, 내 몸을 길에 맞추고 신발을 내 발에 맞춰 길들이는 과정입니다.

만약 50대에 순례길을 꿈꾸고 계신다면, 지금 당장 편안한 신발을 골라 신고 가까운 둘레길이나 동네 뒷산부터 매일 가볍게 걷는 연습을 시작해 보세요.

내 발로 직접 길들인 신발과 다져놓은 체력이야말로 길 위에서 여러분을 지켜줄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될 것입니다. 이렇게 든든하게 준비를 마치고 드디어 스페인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습니다.

다음 글에서는 프랑스길의 진짜 시작점, 낭만이 가득한 남프랑스의 작은 마을 '생장피에드포르'에 도착한 첫날 이야기로 찾아오겠습니다. Buen Cami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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