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 산티아고 순례길: 물집 없이 완주한 하루 루틴과 방법

산티아고를 걷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이 나이에 진짜 800km를 걸을 수 있을까'였습니다. 주변에서도 다들 "힘들 텐데 괜찮겠냐"며 걱정했습니다. 하지만 50대의 나이로 프랑스길 전 구간을 걷는 동안, 다행히 발목 부상이나 무릎 통증은 물론 물집 한 번 잡히지 않고 무사히 완주할 수 있었습니다. 비싼 장비 덕이 아니라 걷는 내내 지킨 몇 가지 사소한 습관 덕분이었습니다.

강 건너편으로 웅장한 성당과 전통 건물들이 늘어선 프랑스 바욘의 평화로운 풍경

남의 속도 대신 내 호흡대로 걷기

프랑스 생장에서 스페인 산티아고까지 이어지는 800km 여정은 보통 매일 25km 안팎을 걸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 '하루 25km'라는 숫자, 50대 몸엔 생각보다 훨씬 버거웠습니다. 순례길 초반, 젊은 순례자들과 나란히 걷다 보니 저도 모르게 그들의 보폭을 억지로 따라가고 있었습니다. 발이 아프고 무릎이 뻐근해도 뒤처지기 싫다는 조급함에 그냥 걸었던 것입니다.

결국 그 조급함이 다음 날 발의 통증으로 돌아왔습니다. 그 통증을 느끼고 나서야 정해진 일정표를 내려놓기로 했습니다.

그날 이후 남편과 함께 걷는 방식을 완전히 바꿨습니다. 끝없이 이어지는 메세타 평원을 걷거나 무릎에 부담이 컸던 긴 내리막길을 내려온 다음 날에는, 과감히 10km만 걷고 일찍 멈췄습니다. 몸살 기운이 있거나 마음에 드는 마을을 만나면 하루 더 묵어가기도 했습니다. 그런 날은 마트에서 장을 봐와 숙소에서 직접 음식을 해 먹고, 마을을 느긋하게 구경하며 하루를 보냈습니다.

다른 순례자들이 정해진 일정표대로 다음 마을로 빠르게 넘어가는 것을 볼 때면 저희만 뒤에 남아있는 기분이 들 때도 있었습니다. 처음엔 그게 뒤처지는 것 같아 불안했는데, 막상 그렇게 걸어보니 오히려 다음 날 몸이 훨씬 가벼워졌습니다.

남의 속도가 아닌 저희 호흡대로 걷기 시작하자, 그냥 지나칠 뻔했던 길가의 들꽃이며 소박한 풍경들이 그제야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발과 무릎을 지킨 실전 방법 3가지

조급함을 내려놓는 것만큼이나 몸을 지키는 현실적인 방법도 필요했습니다. 800km를 걸으며 직접 겪어보고 확실히 효과를 본 세 가지입니다.

  1. 이중 양말 착용과 발 건조 — 얇은 발가락 양말을 먼저 신고, 그 위에 도톰한 트레킹 양말을 겹쳐 신었습니다. 발과 신발 사이의 쓸림을 양말끼리 나눠 받다 보니 피부에 직접 자극이 닿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걷다가 그늘이 나오면 신발과 양말을 벗어 발을 바람에 말렸습니다. 사실 이 습관 하나가 800km 내내 물집 없이 완주한 가장 큰 비결이었습니다.

  2. 무릎 보호대와 등산스틱으로 하중 분산 — 매일 아침 무릎 보호대를 착용했습니다. 착용하고 안 하고의 차이가 걸을수록 크게 느껴졌습니다. 여기에 등산스틱도 적극 활용했는데, 스페인의 거친 돌길과 내리막에서는 이게 단순한 지팡이가 아니었습니다. 몸무게를 다리로만 버티는 대신 양팔로 나누어 짚으니, 무릎과 발목에 전해지는 충격이 눈에 띄게 줄었습니다.

  3. 36리터 배낭, 6kg 이내 짐 무게 유지 — 배낭 용량을 36L로 줄이고, 꼭 필요한 짐만 챙겨 6kg대로 맞췄습니다. 처음엔 '혹시 필요하지 않을까' 싶어 이것저것 다 넣고 싶었습니다. 그래도 일단 최소한으로만 챙겨서 떠났는데, 막상 걸어보니 그 판단이 옳았습니다. 짐이 1kg 늘어날 때마다 어깨와 허리에 쌓이는 피로가 확연히 달랐습니다. 결국 짐 하나를 덜어내는 것이 체력을 아끼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었습니다.

50대의 몸은 20대와 달라서 한 번 무릎이나 관절에 무리가 오면 회복하는 데 훨씬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그래서 아프기 전에 미리 아끼고 챙기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돌이켜보면 이 세 가지 중 하나라도 소홀히 했다면 800km 완주는 어려웠을 겁니다. 특히 이중 양말은 처음엔 '이게 얼마나 다를까' 싶었는데, 걸으면 걸을수록 확실히 다르다는 걸 느꼈습니다.

푸른 하늘과 넓은 들판 사이로 길게 뻗어 있는 산티아고 순례길의 한적한 흙길과 순례자

50대 체력을 지킨 하루 일과표

800km를 부상 없이 걷기 위해 저희 부부가 매일 지킨 하루 일정은 생각보다 참 단순했습니다. 스페인의 한낮 뙤약볕은 50대의 체력을 생각보다 빠르게 소진시키기 때문에, 보통은 새벽 6시에 일어나 6시 30분이면 서늘한 공기를 마시며 길을 나섰습니다. 특히 그늘 하나 없는 메세타 평원 구간을 지날 때는 해가 뜨기 전 조금이라도 더 걸으려고 새벽 5시부터 일어나 일찌감치 출발하기도 했습니다.

보통 2~3시간쯤 걷다 첫 번째 마을이 나오면, 바(Bar)에 들러 따뜻한 카페콘레체나 오렌지 주스, 감자가 든 스페인식 오믈렛인 또르띠야로 든든하게 배를 채우고 쉬어갔습니다.

사실 초반에는 '조금만 더 가서 쉬자'며 첫 마을을 무심코 지나쳤다가 다음 마을이 한참 동안 나오지 않아 무척 힘들었습니다. 그 뒤로는 쉴 수 있을 때 쉬어야 한다는 걸 깨닫고 마을이나 바(Bar)가 보이면 무조건 들어가 쉬어갔습니다. 그렇게 잠시 앉아 따뜻한 차와 음식을 챙겨 먹으며 숨을 돌리고 나면, 지쳤던 다리에 다시 걸을 힘이 생겨났습니다.

출발을 서두른 덕분에 늦어도 오후 2시 전에는 무조건 예약한 알베르게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도착하면 바로 샤워를 하고, 침대 벽에 다리를 올린 채 20~30분간 누워 다리의 붓기를 가라앉혔습니다.

다리가 풀리고 나면 오후 5시쯤 주방이 있는 숙소에서는 마트에서 장을 봐와 저녁을 지어먹었고, 주방이 없는 곳에서는 근처 식당에서 순례자 메뉴로 일찌감치 식사를 마쳤습니다. 하루를 길게 쓰지 않고 일찍 걷고 일찍 쉬는 이 단순한 생활 리듬이, 50대의 체력 유지에 도움이 되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50대에 산티아고 순례길 800km를 완주하는 게 현실적으로 가능한가요?

A. 네, 충분히 가능합니다. 저 말고도 길에서 만난 50·60대 순례자들이 꽤 많았습니다. 하루 거리에 집착하지 않고 내 몸 상태에 맞춰 걸을 준비만 되어 있다면 충분히 끝까지 걸을 수 있습니다.

Q. 이중 양말이 정말 물집 예방에 효과가 있나요? 발이 더 덥지 않나요?

A. 저도 처음엔 그 걱정부터 했습니다. 그런데 통기성 좋은 메리노울 소재를 고르면 생각보다 답답하지 않았습니다. 핵심은 발가락 양말을 안쪽에 신어 발가락 사이 마찰을 없애는 것이고, 쉬는 시간마다 양말을 벗어 발을 말리면 더위 문제도 크게 줄어듭니다.

Q. 배낭 무게 6kg을 맞추려면 어떤 짐을 줄여야 하나요?

A. '혹시 필요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챙긴 물건부터 빼야 합니다. 옷은 최소한만 가져가 세탁해서 입고, 불필요한 비상약 중복분, 두꺼운 보조배터리, 여벌 신발처럼 없어도 되는 물건은 과감히 뺍니다.

Q. 등산스틱은 처음부터 쓰는 게 좋은가요, 아니면 힘들 때만 꺼내 쓰면 되나요?

A. 처음부터 쓰는 걸 권합니다. 무릎이 아프기 시작한 뒤 꺼내면 이미 관절에 부담이 상당히 쌓인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예방 차원에서 출발 첫날부터 양손에 스틱을 잡고 걷는 게 훨씬 현명합니다. 특히 끝없는 내리막길에서 스틱이 무릎 충격을 받아주는 걸 확실히 체감할 수 있습니다.

마치며

산티아고 순례길은 빨리 걷는 사람만의 길이 아닙니다. 내 몸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끝까지 걷는 사람의 것입니다. 물집 예방과 배낭 무게 관리 같은 작은 방법들을 미리 챙기고, 무엇보다 남들과 비교하는 조급함을 내려놓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언젠가 노란 화살표를 따라 걸을 계획을 품고 계신다면, 주저하지 말고 가벼운 걸음으로 그 첫발을 내디뎌보시길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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