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 순례길 #2] 50대에 떠나는 800km, "낙오하면 어쩌지?" 걱정하는 당신에게
산티아고 프랑스길 800km를 가겠다고 마음먹은 순간부터 제 머릿속을 떠나지 않던 단 하나의 질문이 있었습니다.
"내 나이 오십이 넘었는데, 이 무거운 배낭을 메고 끝까지 걸을 수 있을까? 중간에 다치거나 낙오해서 부끄럽게 한국으로 돌아오면 어쩌지?"
젊은 친구들이야 타고난 체력과 젊음으로 밀어붙인다지만, 50대인 저는 무릎 관절도 늘 걱정이었고 체력도 예전 같지 않아 솔직히 출발 직전까지 밤잠을 설칠 정도로 두려움이 앞섰습니다.
주변에서도 그 나이에 무리하는 것 아니냐며 만류하는 목소리가 있어 마음이 더 무거웠지요. 하지만 저는 '이 생각 하나'를 바꿔 먹은 덕분에 몸도 마음도 다치지 않고 무사히 완주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은 저와 같은 나이대에 순례길을 고민하시는 분들을 위해, 두려움을 극복한 제 마음가짐과 현실적인 체력 관리 팁을 공유해 드리고자 합니다.
1. "힘들면 하루 더 쉬어가자"는 마음의 여유가 준 선물
순례길은 남들과 겨루는 올림픽 육상 경기가 아닙니다. 남들보다 하루라도 빨리 산티아고 대성당에 도착한다고 해서 상금을 주는 것도 아니고, 늦게 걷는다고 해서 탈락시키는 무서운 심판관도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은연중에 앞서가는 사람들을 보며 조급해지기 쉽습니다. 그래서 저는 비행기 표를 끊을 때부터 제 자신과 한 가지 아주 단단한 약속을 했습니다.
"가이드북에 적힌 매일의 추천 코스에 내 몸을 억지로 맞추지 말자. 걷다가 몸이 조금이라도 신호를 보내면 그 즉시 멈추고, 마음에 쏙 드는 평화로운 마을을 만나면 주저 없이 하루 더 쉬어가자."
이 단순한 다짐이 제 순례길의 모든 풍경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남들이 한 달 만에 걷는 길을 내가 35일, 아니 40일 만에 걸어도 전혀 상관없다는 여유를 가지니 배낭의 무게도, 마음의 부담감도 한결 가벼워졌습니다.
신기하게도 "중간에 낙오해도 괜찮다, 힘들면 언제든 쉬어가면 된다"고 마음을 비우니 오히려 몸의 긴장이 풀리면서 한 걸음 한 걸음 더 건강하게 멀리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조급함을 내려놓는 순간, 길 위의 바람과 하늘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2. 50대 순례자가 체력 부담을 줄이기 위해 꼭 지켜야 할 실전 원칙
마음의 여유와 더불어, 50대의 무릎과 발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제가 길 위에서 철저하게 지켰던 세 가지 현실적인 원칙이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저는 800km를 완주하는 동안 물집이 단 한 번도 잡히지 않았고, 관절 부상 하나 없이 아주 건강하게 걸어서 마칠 수 있었습니다.
- 첫째, 동행의 페이스에 절대 휘둘리지 않고 틈틈이 발 말리기
나보다 빠른 사람들에게 억지로 속도를 맞추지 않고 제 속도를 유지했습니다. 길 중간에 쉴 만한 장소나 그늘이 나오면 주저 없이 신발과 양말을 벗어 던졌습니다.
뜨겁게 열이 오른 발에 시원한 바람을 쐬어주며 땀을 완전히 말린 덕분에, 남들은 다 겪는 물집 고통을 저는 단 한 번도 겪지 않고 완주할 수 있었습니다. - 둘째, 무릎 보호대와 등산스틱으로 하중 분산하기
무릎 보호대를 매일 아침 테이핑하듯 착용해 하중을 분산시켰으며, 특히 등산스틱은 제 기준에 정말 '없어서는 안 될 최고의 무기'였습니다. 스페인의 순례길은 포장된 아스팔트가 아닌 자연 그대로의 길입니다.
그래서 비가 오면 깊은 물웅덩이나 미끄러운 진흙길이 생기곤 하며, 울퉁불퉁한 돌길도 많아 자칫 잘못하면 발목을 삐끗하기 십상입니다. 이때 등산스틱을 단단히 짚고 균형을 잡으며 걸은 덕분에 수많은 위험천만한 순간들을 안전하게 넘길 수 있었습니다. - 셋째, 36L 배낭으로 짐의 무게 줄이기
배낭은 욕심을 부리지 않고 36리터짜리를 골라 꼭 필요한 것만 채웠습니다. 배낭의 크기가 크면 클수록 짐을 더 넣고 싶어지는 게 사람 마음입니다.
아예 가방 크기를 36리터로 제한해 두고 필수품만 챙겼더니, 저울에 달았을 때 제 몸무게의 10% 정도인 6kg대의 완벽한 무게가 나왔습니다. 가벼운 배낭 덕분에 어깨와 척추의 피로를 최소화할 수 있었습니다.
3. 완주라는 목표보다 소중한 '나만의 속도'를 찾는 여정
50대라는 나이를 지나며 떠난 순례길에서 배운 가장 값진 깨달음은, 우리네 인생도 이 순례길과 참 많이 닮아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우리는 젊은 시절 남들보다 빠르게 성공하기 위해, 사회적 기준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 앞만 보고 숨 가쁘게 전력 질주하며 살아왔습니다.
하지만 스페인의 뜨거운 흙길과 끝없는 지평선 위에서 저는 비로소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오롯이 '나만의 속도'로 걷는 법을 배웠습니다.
조금 느리게 걷더라도 길가에 수줍게 피어난 들꽃을 눈에 담고, 스쳐 지나가는 선선한 바람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다리가 지치면 그늘 좋은 나무 아래 앉아 시원한 물 한 모금 마시는 그 '멈춤의 시간'들이 얼마나 눈부시게 아름다운지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혹시 나이 때문에, 혹은 남보다 뒤처져 낙오할까 봐 두려워 출발을 망설이고 계시나요? 걱정하지 마세요.
우리에겐 젊은이들에게 없는, 힘들면 언제든 쉬어갈 줄 아는 삶의 연륜과 넉넉한 여유가 있습니다. 그 여유로운 발걸음이 결국 당신을 안전하고 행복하게 산티아고 대성당 앞으로 데려다줄 것입니다.
마치며: 두려움을 설렘으로 바꾼 비결
나이 오십이 넘어 두려움을 안고 떠났던 길이지만, "힘들면 쉬어가자"는 마음가짐 덕분에 저는 비로소 첫발을 뗄 수 있었습니다.
또한 가기 전에 국내에서 걷기 연습을 미리 해두었던 것이 무엇보다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저와 같은 고민을 하시는 분들께 제 이야기가 조그만 용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Buen Camino!
다음 글에서는 제가 출발하기 전에 동네 뒷산이랑 둘레길을 걸으며 미리 몸을 풀었던 소소한 이야기를 들려드릴게요.